- 재선충 피해 5년 새 16배, 방제 예산은 4배…군수는 정책 성과로 답해야
- 군의회는 감시·견제, 산림부서는 방제 실적, 산림조합은 사업 성과 공개하라
행정의 가장 무서운 병은 ‘하는 척 병’이다. 대책을 세우는 척, 예산을 쓰는 척, 현장을 챙기는 척하면서 정작 결과에는 책임지지 않는 병이다. 문제가 터지면 회의를 열고, 피해가 커지면 예산을 늘리고, 여론이 들끓으면 현장으로 달려간다. 그러나 달라지는 것은 보고서의 분량과 예산 규모뿐이다. 숲은 죽어가는데 행정은 여전히 바쁘다고 말한다.
가평군의 소나무재선충병 사태가 이런 행정의 실효성을 묻고 있다. 2021년 4,591그루였던 피해 규모는 2025년 7만2,507그루로 약 16배 급증했다. 같은 기간 방제 예산은 8억2,800만원에서 35억1,800만원으로 4.2배 늘었다. 예산은 네 배 넘게 늘었는데 피해는 열여섯 배 가까이 커졌다. 자연적 요인을 고려하더라도 기존 방제 정책의 성과와 한계를 검증해야 할 충분한 이유다.
본보는 지난 4년간 26차례에 걸쳐 재선충병 확산을 경고했다. 보납산을 비롯한 피해 현장을 기록하고 대책을 촉구했다. 그러나 피해 확산세는 꺾이지 않았다. 가평의 대표 산업인 잣 생산량마저 과거의 100분의 1 수준으로 감소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생산량 감소의 원인은 별도로 규명해야 하지만 지역 산림자원의 위기가 심각하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첫 번째 책임 주체는 서태원 군수다. 군수는 방제 정책의 방향을 결정하고 예산과 행정조직을 총괄하는 군정 책임자다. 민선 8기 출범 5년 차에 접어든 지금, 재임 기간 추진한 방제사업의 성과와 한계를 설명해야 한다.
지난 9일 추미애 경기도지사 방문 당시 특별방제구역 지정을 요청한 것도 필요하지만, 그 제도가 방제의 걸림돌이었다면 왜 더 일찍 개선을 요구하지 않았는지 밝혀야 한다. 양평군이 지난 8월 특별방제구역으로 지정되는 동안 가평군은 어떤 대응을 했는지도 공개해야 한다.
두 번째는 가평군의회다. 군의회는 집행부의 예산을 심의하고 행정사무감사를 통해 사업 성과를 점검할 권한을 가진다. 피해가 해마다 증가하는 동안 방제 예산의 효과를 얼마나 따졌는가. 잘못된 방제 방식이나 예산 집행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을 요구했는가. 의회는 지난 5년간의 예산 심의와 감사 기록으로 답해야 한다. 예산 승인만 하고 성과를 묻지 않았다면 감시와 견제 기능을 제대로 수행했는지 돌아봐야 한다.
세 번째는 가평군 산림행정 부서다. 방제계획 수립과 현장 관리, 피해목 제거, 사후 점검을 담당하는 실무 부서는 지역별 방제 실적과 재감염 여부를 구체적인 자료로 제시해야 한다. 피해가 반복되는 지역에서 기존 방제 방식을 어떻게 개선했는지도 밝혀야 한다. 예산 집행률이 높다는 것과 방제 효과가 높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가평군산림조합도 검증에서 예외일 수 없다. 방제사업에 참여했다면 계약 규모와 실제 작업 실적, 사후관리 성과를 공개하고 평가받아야 한다. 고사목을 활용하는 산림자원화사업과 살아 있는 잣나무를 보호하는 방제사업은 구분해야 한다. 산림조합의 책임 역시 실제 수행한 사업과 계약상 의무를 기준으로 따져야 한다.

9일 추미애 경기지사가 남이섬을 방문해 재선충 확산 방지를 위한 행정지원 방안 등을 논의했다. [사진 왼쪽/연제창 더불어민주당 지역위원장(포천.가평),우측 김종성 군의장.두번째 서태원 가평군수]
이제 책임의 순서를 분명히 해야 한다. 군수는 정책 결정과 집행 결과를, 군의회는 감시와 견제 실적을, 산림부서는 방제 성과를, 산림조합은 참여 사업의 이행 결과를 제시해야 한다. 책임을 서로 떠넘기거나 예산 부족과 제도적 한계만 반복해서는 안 된다.
가평의 잣나무는 수십 년을 자라 숲을 이뤘다. 그 숲이 죽어가는 동안 행정은 무엇을 했는가. 군수는 어떤 결정을 내렸고, 군의회는 무엇을 바로잡았는가. 행정의 성적표는 회의 횟수도, 현장 방문 사진도, 쏟아부은 예산도 아니다. 얼마나 많은 숲을 지켜냈는지가 그 답이다.
대책은 세우는 척, 책임은 모르는 척하는 행정으로는 죽어가는 숲을 살릴 수 없다. 5년 새 16배 가까이 늘어난 피해 수치 앞에서 이제 서태원 군수와 가평군의회가 먼저 답해야 한다. 무엇을 했는지가 아니라 왜 피해를 막지 못했는지,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바꿀 것인지 숫자와 성과로 증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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