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누군지 알아?”
이 말이 실제로 이오남 가평군의원의 입에서 나왔다면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주민의 선택으로 권한을 위임받은 선출직 공직자가 주민을 상대로 자신의 신분과 나이를 내세웠다면, 이는 단순한 말실수가 아니라 지방의원이 주민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지를 드러내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출처/가평군의회 홈페이지]
이 의원은 지난 11일 청평면 주민자치회 정례회의를 앞두고 주민자치회 간사와 언쟁을 벌이며 거친 욕설을 주고받았다. 현장 목격자들은 이 의원이 먼저 욕설했고 “죽여버리겠다”는 취지의 말까지 했다고 주장한다. 이 의원은 반말로 오해받은 데 대해 사과했지만 상대방이 계속 시비를 걸어 서로 욕설하게 됐다는 입장이다.
양측의 주장이 일부 엇갈리는 만큼 구체적인 발언과 언쟁의 경위는 추가로 확인돼야 한다. 그러나 이 의원 스스로 욕설이 오간 사실을 인정한 이상, 선출직 공직자로서 부적절한 처신이었다는 비판만큼은 피하기 어렵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 의원이 당선증을 받은 지 불과 70여 일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말 그대로 당선증의 잉크도 채 마르지 않은 시점이다. 군민에게 겸손하게 인사하고 의정활동의 기본을 익혀야 할 초선 의원이 공개된 행정복지센터에서 주민과 욕설을 주고받는 물의를 빚었다면, 과연 지방의원으로서 갖춰야 할 절제력과 책임 의식을 지니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지방의원은 주민 위에 군림하는 자리가 아니다. 의원이라는 직함은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특권이 아니라 주민의 목소리를 더 낮은 자세로 들어야 할 의무다. 설령 상대방이 먼저 무례하게 말하거나 시비를 걸었다고 하더라도, 감정을 절제하고 갈등을 조정해야 하는 쪽은 공직자인 의원이다. 일반 주민과 똑같이 욕설로 맞서 놓고 “서로 욕했다”고 해명하는 것만으로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특히 “내가 누군지 아느냐”는 발언은 사실 여부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선출직 공직자가 자신의 신분을 앞세워 주민을 압박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면 이는 권위의식을 넘어 공직관의 문제다. 주민이 의원을 두려워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의원이 주민의 평가와 질책을 두려워해야 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다.
이번 논란이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 의원을 둘러싼 잡음이 이번 한 번에 그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선거 전후로 월세와 공동관리비 체납을 둘러싼 분쟁 주장이 제기됐고, 당선 이후에는 선거비용 보전 청구와 회계책임자 선임·수당 지급의 적정성을 둘러싼 의혹이 불거졌다. 최근에는 행정사무감사를 명분으로 지역 상인회 자료를 요구하는 과정에서 ‘표적성·보복성 감사’라는 반발까지 나왔다.
물론 제기된 의혹과 주장을 모두 사실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이 의원에게는 충분히 해명하고 반론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짧은 기간에 채무 문제와 선거회계 의혹, 상인회와의 갈등, 주민자치회 현장에서의 욕설 논란까지 잇따랐다는 사실 자체는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개별 사안을 모두 “오해”, “시비”, “정상적인 의정활동”이라고 설명하는 것만으로는 군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다.
의원의 자질은 본회의장에서 준비된 원고를 읽을 때보다 자신에게 항의하거나 불편한 질문을 던지는 주민을 대할 때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비판을 견디지 못하고 신분과 나이를 앞세우거나 욕설로 대응한다면, 앞으로 더 큰 이해관계와 갈등이 얽힌 군정 현안을 제대로 조정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 의원은 더 이상 침묵하거나 상대방에게 책임을 돌려서는 안 된다. 당시 어떤 말을 했는지, “내가 누군지 아느냐”거나 위해를 암시하는 발언을 했는지 군민 앞에 명확히 밝혀야 한다. 욕설한 사실에 대해서는 조건이나 변명을 붙이지 말고 공개적으로 사과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과 연제창 포천·가평 지역위원장도 현장에 있었던 만큼 모호한 태도로 넘어가서는 안 된다. 당시 상황을 사실대로 밝히고 소속 의원의 품위 유지 의무 위반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정당이 제 식구 감싸기에 머문다면 개인 의원의 일탈을 넘어 공당의 책임 문제로 번질 수밖에 없다.
당선증은 주민 위에 설 수 있는 신분증이 아니다. 군민을 위해 더 무거운 책임을 지겠다는 약속의 증서다. 이오남 의원은 지금이라도 자신이 누구인지 내세우기 전에, 자신을 그 자리에 세운 사람이 누구인지를 돌아봐야 한다.
군의원이 “내가 누군지 아느냐”고 주민에게 물을 일이 아니다. 오히려 군민이 이 의원에게 물어야 한다.“당신은 왜 군의원이 됐는가.”
BEST 뉴스
-
후보 3명 뽑고 다시 ‘감사’…가평시설공단 사태, 임명권자 책임은 없나
가평군시설관리공단 신임 이사장 선임이 후보 3명까지 압축한 뒤 돌연 멈춰 섰다. 가평군이 선임 절차에 하자가 있었는지 확인하라며 공단에 자체감사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서태원 가평군수 공단은 가평군 산하 지방공기업이고 이사장 최종 임명... -
군수도, 공직사회도, 지역주민도 모르는 가평 ‘공동화 위기’…3년 뒤 무슨 일이 벌어질까
지난 8일 서태원 가평군수가 '군민의날'을 기념해 축사를 하고 있다[사진 정연수 기자] 경기 가평군이 인구감소지역으로 다시 지정된 가운데 3년 뒤로 다가온 춘천~속초 동서고속화철도 개통이 지역 관광산업과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중장기 대응 전략을 점검... -
[속보]가평시설관리공단 이사장 공모 ‘중대 하자’…최종 후보 3명 뽑고도 원점으로
경기 가평군시설관리공단의 차기 이사장 선임 절차가 임원추천위원회 구성 단계부터 중대한 하자가 있었다는 자체감사 결과로 인해 원점에서 재검토될 상황에 놓였다. 이미 이사장 공모에 지원한 9명 가운데 서류심사와 면접을 거쳐 최종 후보자 3명까지 선정한 상... -
[팩트체크] 면접 질문지 ‘사전 유출’ 의혹…확인된 사실은 어디까지인가
가평군시설관리공단 이사장 후보 면접을 앞두고 면접 질문지가 사전에 유출돼 특정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한 지역언론은 6일 관련 보도를 통해 이 같은 의혹을 제기하면서 제보가 있다는 점도 함께 언급했다. 그렇다면 실제 질문지는 언제 만들어졌고, 누... -
감사로 ‘부적격’ 확인하고도 광고비 준다면?…가평군 행정광고, 형사책임 논란 번질 수도
시민단체가 가평군청에 등록된 지방.지역 언론사를 대상으로 행정광고비 지급에 대한 감사청구를 해 해당 언론과 기자들이 바짝 긴장을 하고 있다. 청구의 핵심은 "취재를 통해 자체 생산한 기사가 30%미만인 언론에 광고비를 얼마나 지급하냐"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다. 만약, 가평군이 행정광고를 지급해 온 지방.지... -
3개 시·군 단체장 재산 뜯어보니…백영현 29.9억·서태원 15.1억·김덕현 14.1억
경기북부 인접 지역인 가평·포천·연천 3개 시·군 단체장의 2026년 공직자 재산신고 내역을 비교한 결과, 신고재산 규모뿐 아니라 재산을 구성하는 방식에서도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에 신고된 자료를 기준으로 보면 백영현 포천시장은 29억9,326만2천원, 서태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