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로당 173곳·마을회관 126곳 등 299곳…상당수 임대 정황에도 현황 파악 못 해
-가평군, 지난 3월 설악면 위곡리 한 곳 첫 승인…나머지는 적법성 전수조사 필요
-신축부터 유지·보수까지 공공재정 투입…누적 지원액조차 파악 어려워

보조금으로 지은 가평군 관내 마을회관과 경로당.[사진/정연수 기자]
지방자치단체 보조금으로 건립하고 준공 이후 유지·보수 비용까지 지원받는 경기 가평지역 마을회관과 경로당 일부가 군수의 승인 없이 제3자에게 임대된 정황이 드러났다. 가평군은 건물 일부를 임대하려면 사전에 군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정작 군내에서 임대 중인 시설이 몇 곳인지, 월세 수입이 얼마인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가평군에 따르면 군내에는 경로당 173곳과 마을회관 126곳 등 모두 299곳의 주민 공동이용시설이 있다. 경로당과 마을회관이 같은 건물에 함께 설치된 곳도 있고, 한 마을에 경로당이 2∼3곳 운영되는 사례도 있다. 일부 시설은 1층을 경로당이나 주민 공동공간으로 사용하고 2층은 주거시설 등으로 임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임대료는 마을회나 노인회가 받아 자체 운영비나 공동기금으로 사용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이들 시설 상당수가 신축 단계부터 국비·도비·군비 등 공공재정의 지원을 받았다는 점이다.
마을회관과 경로당은 토지는 마을회나 노인회 소유이고, 건물은 가평군 소유인 경우가 있는가 하면 토지와 건물 모두 마을 소유인 사례도 있어 소유구조가 시설마다 다르다.
건물이 가평군 소유의 공유재산이라면 마을회나 노인회가 임의로 제3자에게 임대할 수 없다. 군수의 사용허가나 관리위탁 등 적법한 절차가 필요하다.
건물이 마을 소유라고 해도 지방보조금을 받아 신축했다면 마음대로 임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평군 관계자는 “마을 소유 건물이라도 신축 보조금이 투입되면 30년 동안 보조재산에 대한 처분 제한을 받는다”며 “다른 용도로 사용하거나 임대하려면 군수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결국 건물 등기명의가 마을로 돼 있다는 이유만으로 일반 사유재산처럼 자유롭게 임대할 수 없다는 의미다.
가평군은 지난 3월 설악면 위곡리의 한 마을회관 임대에 대해 처음으로 공식 승인을 내준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건물은 2012년 사용승인을 받은 마을 소유 시설로, 마을회관과 경로당이 함께 사용하는 복합건물이다. 가평군은 마을 공동시설의 본래 기능을 유지하면서 남는 공간을 임대할 수 있도록 조건을 붙여 승인했다. 가평군이 공식적으로 임대를 승인한 시설은 현재까지 이곳 한 곳뿐이다.
이는 군내 다른 마을회관이나 경로당에서 이뤄지는 임대 가운데 상당수가 군수의 승인 없이 진행됐음을 보여준다. 적법한 승인 없이 임대했다면 공유재산 무단 사용이나 지방보조금으로 취득한 중요재산의 무단 대여·목적 외 사용에 해당할 수 있다.
그러나 가평군은 전체 시설의 임대 실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관련 부서 관계자는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지만 시설 관리는 각 마을에서 하는 부분이 있어 군내 모든 마을회관과 경로당의 사용 실태를 일일이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도 승인받지 않은 임대가 있다는 지적에 “예전부터 임대한 곳이 있다는 이야기는 이번에 처음 들었다”는 취지로 답했다.
가평군이 보유한 기초 통계 역시 경로당과 마을회관의 개수 정도에 머물러 있다. 시설별 소유자와 건립비, 보조금 지원액, 임대 여부, 임대료, 수익금 사용처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통합 관리자료는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더 큰 문제는 이들 시설에 지금까지 투입된 공공재정의 규모조차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마을회관과 경로당 가운데는 건립된 지 20∼30년이 넘은 시설이 적지 않다. 신축과 증축을 담당한 부서가 다르고 오래된 자료가 분산돼 있어, 가평군도 수십 년 동안 투입된 전체 건축비와 유지·보수비를 즉시 산출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군 관계자는 “오래전에 지어진 시설도 있고 최근에 건립된 곳도 있어 전체 건축비를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가평군은 건립 이후에도 시설의 개·보수 요청이 들어오면 지방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지붕과 외벽, 화장실, 보일러, 냉난방시설 등 크고 작은 유지·보수 비용이 계속 공공재정에서 지출되는 구조다.
수십 년 동안 299개 시설의 신축·증축과 유지·보수가 반복된 점을 고려하면 누적 지원액은 막대한 규모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세금으로 건물을 짓고 고치는 동안 해당 시설에서 임대수익이 얼마나 발생했는지, 그 수익금이 어디에 사용됐는지는 행정의 관리 밖에 놓여 있었던 셈이다.
임대료를 개인이 아닌 마을이나 노인회 공동기금으로 사용했다고 하더라도 무단 임대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공유재산을 적법한 승인 없이 제3자에게 빌려준 행위까지 정당화되지는 않는다.가평군이 지난 3월 한 마을에 처음으로 임대를 승인한 만큼 승인 기준의 일관성과 형평성도 새로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기존 무단 임대 시설을 그대로 둔 채 신청한 마을에만 공식 승인을 내준다면, 먼저 법을 지키지 않은 곳은 아무런 제재 없이 수익을 유지하고 뒤늦게 적법한 절차를 밟은 곳만 까다로운 조건을 적용받는 역차별이 발생할 수 있다. 가평군이 실태를 알면서도 적극적인 조사와 시정에 나서지 못하는 배경에는 지역 표심에 대한 정치적 부담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가평군은 전체 인구의 약 34%가 65세 이상인 초고령지역이다. 경로당과 노인회, 마을회는 지역사회에서 높은 조직력과 영향력을 갖고 있다. 지방선거에서는 노인층과 마을 단위 표심이 군수와 지방의원의 당락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 때문에 현직 지방자치단체장이 수십 년 동안 이어진 마을회관과 경로당 임대 실태를 조사해 계약 해지나 임대 중단, 수익금 정산 등의 조치를 내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른바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치적 부담을 이유로 위법 가능성이 있는 공유재산과 보조재산의 사용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마을회관과 경로당에 투입되는 국비·도비·군비는 명칭과 부담 주체만 다를 뿐 모두 국민과 군민이 낸 세금이다. 지방자치단체가 보조금을 지급하고 유지·보수까지 책임진다면 해당 시설이 본래 목적대로 사용되는지, 임대수익은 적법하고 투명하게 관리되는지 확인할 책임도 있다.
지방자치단체장이 무단 임대를 인지하고도 표심이나 정치적 이해관계를 이유로 장기간 조사와 시정조치를 하지 않는다면 행정상 관리·감독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우선 필요한 것은 정확한 실태조사와 위법 여부 확인이다. 세금으로 지은 건물을 세금으로 고치면서 그곳에서 나오는 월세는 관리·감독조차 받지 않는 구조를 더는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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