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지 전수조사에 경기북부 고령농 ‘한숨’…경자유전 원칙과 농촌 현실 충돌
-불법 임대차·무단 휴경 단속 강화…“투기농지와 생계형 임대 구분해야”
“허리가 굽고 무릎까지 아파 이제 농사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조상에게 물려받은 땅을 당장 팔 수도 없고, 대신 농사를 지어줄 사람을 구하기도 어렵습니다.”
"나 죽으면 누가 농사를 지을까?"...포천 중리에 사시는 올해 91세 어르신.[사진/정연수 기자]
정부가 농지 투기를 막고 실제 이용 실태를 파악하기 위한 대대적인 농지 전수조사에 착수하면서 경기북부 농촌지역이 술렁이고 있다. 비농업인의 투기성 농지 보유와 위장 자경을 적발해야 한다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고령화로 더 이상 직접 농사를 짓기 어려운 농민들의 현실이 충분히 반영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전체 농지 195만4천㏊를 대상으로 2026년과 2027년 2단계에 걸쳐 소유·이용 실태를 조사한다. 먼저 1996년 농지법 시행 이후 취득한 농지 115만㏊를 살펴보고, 불법행위가 의심되거나 투기 가능성이 큰 농지는 현장조사까지 벌인다.
행정정보와 위성·드론 영상, 인공지능 분석 등을 활용해 농지 소유 관계와 실제 경작 여부, 휴경 상태, 불법 시설 설치 및 농지전용 여부를 확인한다. 수도권 전 지역과 토지거래허가구역, 농업법인·외국인 소유 농지 등은 투기 위험군에 포함돼 집중적인 조사를 받는다.
가평·연천·포천·동두천 등 경기북부 역시 조사 대상이다. 이들 지역은 수도권이라는 이유로 투기 위험지역에 포함되지만, 농촌 고령화와 인력 부족, 산간농지 증가라는 특수성도 안고 있다.
가평군은 산지가 많아 농지가 작고 불규칙하게 흩어진 곳이 적지 않다. 농기계 진입이 어렵거나 도로와 멀리 떨어진 밭은 임대료를 받지 않아도 경작자를 구하기 어렵다는 게 현지 농민들의 설명이다. 토지 가격 상승을 기대해 농지를 방치하는 외지인도 있지만, 농사를 짓고 싶어도 노동력과 임차인을 구하지 못해 휴경하는 고령농도 함께 존재한다.
연천군은 가평보다 농지 규모가 크고 논농사와 밭농사가 비교적 활발하다. 그러나 접경지역의 인구 감소와 농업인 고령화가 이어지면서 실제 농사는 대규모 경작자나 이웃 농민에게 맡기고 소유권만 고령농에게 남아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연천군의 70대 농민 B씨도 몇 년 전부터 자신의 논을 이웃 농민이 경작하도록 하고 있다. 해마다 쌀 일부를 받는 조건이지만 별도의 계약서는 쓰지 않았다.
B씨는 “마을에서는 수십 년 동안 그렇게 농사를 맡겨왔다”며 “농사를 지을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계약서를 쓰지 않았다고 모두 투기나 불법 임대로 취급하면 고령농은 땅을 팔라는 이야기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포천시는 서울과 수도권 접근성이 좋아 개발 기대에 따른 외지인 농지 취득과 농막·창고·야적장 등 불법 전용 여부가 주요 조사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영북·관인·창수면 등 농촌지역에서는 농가 감소로 한 사람이 여러 소유자의 농지를 빌려 대규모로 경작하는 구조가 확대되고 있다.
도시화가 진행된 동두천은 농지 면적이 상대적으로 적지만 도심 주변 농지의 휴경과 불법 전용, 개발 목적 보유 여부가 조사 쟁점으로 꼽힌다. 농지로 등록돼 있으나 사실상 주차장이나 자재 적치장 등으로 이용되는 토지도 전수조사 과정에서 확인될 가능성이 있다.
현행 농지법은 ‘농지는 자기의 농업경영에 이용하거나 이용할 사람이 소유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헌법 제121조가 선언한 경자유전 원칙에 따른 것이다. 정당한 사유 없이 소유 농지를 직접 경작하지 않거나 불법으로 임대하면 농지 처분 의무와 처분명령, 이행강제금 부과 대상이 될 수 있다. 다만 한국농어촌공사의 농지은행에 맡겨 합법적으로 임대하는 방법도 있다.
지난 5월 국회를 통과한 농지법 개정안은 상속인이나 이농자가 소유할 수 있는 농지의 면적 상한을 없애는 대신 해당 농지를 한국농어촌공사 등에 위탁해 임대하도록 하는 방향을 담고 있다. 농지법 위반 신고포상금 대상에는 불법 임대차가 추가됐고, 위반 농지에 대한 처분명령도 강화됐다.
문제는 농촌 현장에서 정식 계약 없이 이뤄져 온 임대차와 대리경작이다. 고령 농지 소유자가 이웃에게 무상으로 경작을 맡기거나 수확물 일부를 받는 관행이 여전히 남아 있다. 소유자는 자신이 직접 농사를 짓는 것으로 농업경영체에 등록하고, 실제 경작자는 직불금이나 각종 농업지원에서 배제되는 ‘위장 자경’ 문제도 발생한다.
정부는 실제 경작자를 보호하기 위해 임차농 신고센터를 운영하고, 계약서 없이 농사를 짓는 임차농에게 합법적인 임대차계약을 체결하거나 농지은행을 이용하도록 계도할 방침이다. 농지를 부당하게 돌려달라는 요구를 받은 임차농에게 대체 농지를 알선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농민들은 조사 목적이 투기 근절이라면 외지인의 위장 자경과 불법 전용을 우선적으로 가려내되, 고령과 질병 때문에 농사를 계속할 수 없는 농민에게는 충분한 유예기간과 제도 안내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특히 산간·접경지역은 농지은행에 농지를 맡겨도 임차 수요가 없거나, 진입로와 농업용수 부족 때문에 경작자를 찾지 못하는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 농지은행에 위탁을 신청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농지 전수조사가 투기농지를 적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농촌의 실제 소유·임대 구조를 제도권으로 끌어들이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외지인의 시세차익 목적 보유와 평생 농사짓다 은퇴한 고령농의 불가피한 임대를 같은 잣대로 다뤄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경기북부 한 농업 관계자는 “경자유전 원칙은 반드시 지켜야 하지만 직접 경작할 수 없는 고령농이 합법적으로 농지를 보유하고 청년농이나 실제 농업인에게 안정적으로 빌려줄 통로도 마련해야 한다”며 “단속에 앞서 농지은행 위탁과 임대차계약 방법을 마을 단위로 안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농지 전수조사는 농지를 투기 수단이 아닌 생산 기반으로 되돌리기 위한 조치다. 그러나 경기북부 농촌 현장에서 들려오는 질문은 단순하다. “평생 농사를 지었지만 이제 늙어서 농사를 못 짓는데, 우리 땅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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