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일 새벽 물 폭탄에 숨죽인 가평은 빗물과 사투 중이었다. 이른 새벽부터 시작된 폭우는 멈출 줄 모르고 쏟아져 내리며 자연의 고장 가평을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인명 피해와 곳곳에서 발생한 재산 피해는 빗물처럼 불어나고 있었다.
가평읍의 한 저지대 주택가는 이미 발목까지 차오른 빗물로 아수라장이었다. "어제 저녁부터 불안하더니,
새벽에 눈 뜨니 이미 물이 차오르고 있었어요." 흙탕물 속에서 살림살이를 옮기던 김 모 씨(50대)의 얼굴에는 비통함이 가득했다.
김 씨의 집 거실은 이미 물에 잠겨 냉장고와 가구들이 위태롭게 떠 있는 모습이었다. 소방대원들은 쉼 없이 배수 작업을 하고 있었지만, 쏟아지는 비의 양을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청평면으로 향하는 도로는 이미 통제된 곳이 많았다. 산에서 흘러내린 흙과 돌들이 도로를 덮쳐 차량 통행이 불가능했고, 일부 구간은 도로 자체가 심하게 파손되어 있었다.
가평군 조종천[사진/독자 제공]
우회도로를 찾던 운전자들은 거북이걸음으로 움직이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아이들 등원시켜야 하는데, 길이 막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어요." 발을 동동 구르던 한 운전자의 말은 지금 가평의 상황을 대변하는 듯했다.
이번 폭우는 농민들의 애타는 마음을 짓밟았다. 가평읍의 한 농경지는 이미 누런 흙탕물에 잠겨 밭의 경계조차 찾아보기 어려웠다. 힘들게 심었던 농작물들은 빗물에 떠내려가거나 진흙 속에 파묻혀 버렸다.
"올해는 유난히 비가 잦아 걱정이 많았는데, 결국 이렇게 되고 마네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물에 잠긴 밭을 바라보던 이 모 씨(60대)의 목소리에는 허탈감이 묻어났다. 한 해 농사를 망치게 된 농민들의 시름은 깊어지고 있었다.
가평의 명물인 계곡들은 이미 흙탕물 급류로 변해 있었다. 평소 맑고 투명했던 물은 온데간데없고, 엄청난 양의 물이 굉음을 내며 쏟아져 내렸다.
캠핑을 하던 A 씨는 계곡물이 불어나자 황급히 몸만 빠져 나왔다.{독자가 제공한 북면 캠핑장]
지난 주말까지 피서객으로 북적이던 계곡 주변 캠핑장과 상가들은 긴급하게 대피 명령이 내려져 텅 비어 있었다. 인명 피해를 막기 위한 선제적인 조치였지만, 상인들의 한숨은 깊어졌다.
20일 새벽 2시, 청평댐도 수문을 열기 시작했다.[사진/정연수 기자]
밤새 이어진 비로 북한강 수계의 댐 수위도 심상치 않았다. 이미 팔당댐과 청평댐의 수문은 조심스럽게 열리고 있었고, 이는 곧 서울 한강 수위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기에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재난'이라는 단어가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다행히 날이 밝으면서 가평의 폭우는 잦아들었다. 하지만 가평군은 비상대응체제를 가동하고 재난안전대책본부를 중심으로 피해 상황을 실시간으로 집계하며 복구 지원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소방대원, 공무원, 그리고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빗속에서 이어지고 있다.
폭우와의 사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주민들은 서로를 돕고, 공공기관은 밤낮없이 움직이며 이 위기를 헤쳐나가기 위해 힘을 모으고 있다.
빗물이 잦아들고 햇살이 다시 가평을 비출 때, 복구의 손길과 함께 새로운 희망의 불씨가 다시 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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