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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옛날 이야기] 글쟁이도 아닌 게 글쟁이 흉내…백성의 곡식에 기생하는 탐욕

  • 정연수 기자
  • 입력 2026.10.02 13:32
  • 조회수 48,2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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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붓은 장식품, 글방은 돈벌이 수단이고, 관아와 가짜 글쟁이의 기묘한 공생은 남의 글 베껴도 곳간은 열리고, 글방 간판만 걸어도 곡식이 나온다는 이야기란다

옛날이야기 하나 해줄까.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산 좋고 물 맑은 어느 고을의 이야기란다. 그 시절 고을에는 지금보다 백성도 많았고, 먹고사는 형편도 오히려 넉넉했단다. 

 

예날이야기2.png

 

어느 날 보따리 하나 들고 낯선 고장을 찾아온 젊은 부부는 여인숙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지. 세월이 흐르면서 그 고을에는 장사꾼도 늘고, 기술자도 늘고, 붓을 들어 세상 이야기를 전한다는 글쟁이들도 하나둘 생겨났단다.

 

그런데 참으로 기막힌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어. 글쟁이도 아닌 게 글쟁이 흉내를 내고, 글 한 줄 제대로 쓰지 못하면서도 글방의 간판만큼은 누구보다 번듯하게 내거는 세상이 된 것이란다.

 

발품을 팔아 백성의 억울함을 살피거나 관아의 잘못을 찾아낼 생각은 뒷전이었지. 관아에서 내려보낸 방을 그대로 베껴 붙이고, 남이 애써 취재한 글에 숟가락 하나 얹어 제 글인 양 내놓는 것으로 글쟁이 행세를 했단다. 남의 붓끝에 기대어 살아가면서도 글쟁이라는 명패만큼은 놓지 않았던 것이지.

 

그런데 더 기막힌 것은 따로 있었어. 글을 쓰든 말든, 백성을 위해 무슨 일을 하든 상관없이 글방의 간판만 유지하면 관아의 곳간에서 곡식이 흘러나왔단다. 어떤 이는 글방을 여러 개 차려놓고 곳간에서 나오는 곡식을 챙기는 데 열을 올렸지.

 

글 능력보다 곳간지기와의 친분이 중요하고, 글의 가치보다 관아의 눈치를 살피는 재주가 더 큰 돈이 되는 세상. 글쟁이는 간판뿐이고, 붓은 장식품이며, 남은 것은 오직 밥그릇뿐이었단다. 심지어 한 손에는 붓을 들고 관아를 감시하는 척하면서 다른 손으로는 관아의 일감을 받아 품삯까지 챙기는 이들도 있었어.

 

백성의 알 권리를 지켜야 할 글쟁이가 관아를 상대로 장사까지 한다면 과연 누구를 감시하고 누구의 이익을 대변하겠니. 붓으로는 관아를 감시한다면서 밥그릇은 관아에 맡겨놓는다면, 그것은 언론의 독립이 아니라 경제적 종속을 자초하는 일이 아니겠니. 그러나 더 큰 책임은 곳간지기에게 있었단다.

옛날이야기.png

백성이 피땀 흘려 모은 곡식을 나누어 주면서도 글방이 제 역할을 하는지, 곡식을 받을 자격은 있는지 제대로 따져보지 않았던 것이지. 주는 사람은 제 곡식이 아니니 아쉬울 것이 없고, 받는 사람은 해마다 받아왔으니 당연한 자기 몫으로 여겼단다.

 

그렇게 관아와 글방의 기묘한 공생이 이어졌어.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잘못된 관행은 굳어졌고, 정작 곡식의 주인인 백성들만 소외됐단다.

 

할머니는 이런 모습을 보면서 흡혈귀가 떠올랐어. 남의 피를 빨아야 살아가는 흡혈귀처럼, 백성의 곡식에 기대어 사적인 이익을 키우는 탐욕이야말로 경계해야 할 대상이 아니겠니.

 

물론 모든 글쟁이가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니란다. 지금도 묵묵히 현장을 누비며 진실을 찾아내고, 권력과 타협하지 않는 참된 글쟁이들이 있지.

 

문제는 글쟁이도 아닌 사람들이 글쟁이 행세를 하며 공공의 재산을 사적인 밥그릇으로 만들고, 이를 견제해야 할 곳간지기마저 잘못된 관행을 방치하는 데 있는 것이란다.

 

이제는 곳간의 문을 어떤 기준으로 열었는지, 누구에게 얼마나 많은 곡식을 나누어 주었는지, 그 대가로 백성을 위해 무슨 일을 했는지 분명히 밝혀야 하지 않겠니.

 

글방의 간판이 곡식을 받을 자격증이 될 수는 없고, 오랜 관행이 부당한 특혜를 정당화하는 면죄부가 될 수도 없는 법이지. 옛날이야기는 여기까지다. 다만 이것 하나는 기억했으면 좋겠구나.글쟁이는 간판이 아니라 글로 증명해야 하고, 곳간지기는 친분이 아니라 원칙으로 곡식을 나누어야 한단다.

 

마을의 곳간은 글쟁이의 밥그릇도, 곳간지기의 사유재산도 아니기 때문이지. 글쟁이도 아닌 게 글쟁이 흉내를 내며 백성의 곡식에 기생하고, 곳간지기는 이를 눈감아 주는 세상. 그곳에서 정작 사라진 것은 곡식만이 아니라 언론의 양심과 행정의 책임이 아니겠니.오늘 이야기는 여기까지야. 다음에는 여인숙에서 무덤까지의 이야기를 들려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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