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급과 완장만 있고 책임은 없다면 조직의 중추라 할 수 있나
-민원인도 ‘군수만 만나야 해결된다’는 인식에서 벗어나야
-군수 대신 듣고 판단하며 해결해야 할 간부 공무원들 책임 방기
[사진/가평in뉴스 갈무리]
신하리 골프장 진입도로를 둘러싼 주민 반발이 결국 군청 복도에서 욕설 섞인 항의로 번졌다. 주민들이 수차례 서태원 가평군수와의 면담을 요청했지만 성사되지 않자, 한 주민이 우연히 마주친 서 군수의 앞을 막고 답변을 요구한 것이다. 아무리 답답했더라도 군청에서 군수에게 욕설하며 항의한 행동은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단순히 ‘흥분한 민원인의 돌발행동’으로만 치부해서도 안 된다. 주민의 분노가 군청 복도까지 밀고 들어오기 전에 대체 가평군 행정조직은 무엇을 했는지 물어야 한다. 군수가 모든 민원을 직접 듣고 모든 결정을 혼자 내리는 사람은 아니다.
가평군에는 담당 팀장이 있고 과장이 있으며, 그 위에는 국장이 있다. 군민과의 소통을 담당한다는 조직도 존재한다. 이들은 군수를 보좌하고 담당 업무를 검토하며 주민과 행정 사이의 갈등을 조정하라고 세금으로 급여를 받는 공직자들이다.
그런데 신하리 주민 한 명이 40도에 육박하는 폭염 속에서 장시간 1인 시위를 이어가는 동안, 군수뿐 아니라 담당 부서와 간부 공무원 가운데 누구 하나 먼저 다가가 마주 앉았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물 한 병 건네는 것을 넘어 “무엇이 억울한지 들어보겠다”, “확인한 뒤 언제까지 답변하겠다”며 주민을 대화의 자리로 이끌었어야 했다. 그것이 행정의 역할이고 공직자의 기본 자세다. 주민이 폭염 속에서 피켓을 들고 버텨야 하고, 또 다른 주민이 군청 복도에서 군수를 붙잡아야만 목소리가 전달되는 행정이라면 조직은 사실상 작동하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다.
주민들의 자세 역시 돌아볼 대목이 있다. 모든 민원을 반드시 군수를 만나 해결해야 한다는 인식은 바람직하지 않다. 군수 면담이 필요할 수는 있지만, 행정에는 정해진 책임과 지휘 체계가 있다. 담당 팀장과 과장, 국장이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우선이다.
사업 추진 절차에 문제가 있는지, 주민제안 방식이 적절했는지, 골프장 진입도로 개설에 공익성이 있는지를 검토하는 일은 군수 혼자 할 일이 아니다. 해당 부서가 자료와 법적 근거를 확인하고 책임 있게 답변해야 할 사안이다. 그런데 주민들이 왜 담당 부서의 설명을 신뢰하지 못하고 군수만 만나겠다고 나섰는지도 행정은 자문해야 한다.
담당 부서가 충분히 설명하고 국장과 과장이 책임 있는 답변을 내놓았다면 주민들이 폭염 속에서 군수 면담만 요구했겠는가. 결국 ‘군수를 만나야만 해결된다’는 잘못된 인식마저 가평군 스스로 키운 것은 아닌지 되짚어봐야 한다.
가평군 도시과는 최근 과장의 병가와 실무 팀장 교체가 겹쳤다. 하지만 공무원 한 명이 자리를 비우거나 담당자가 교체됐다는 이유로 행정의 답변과 민원 대응까지 멈춰서는 안 된다. 행정은 개인이 아니라 조직으로 움직인다.
과장이 병가 중이면 직무대리와 국장이 대응해야 하고, 팀장이 바뀌었다면 업무 인수인계를 통해 답변을 이어가야 한다. 주민이 같은 질문을 반복하며 담당자를 찾아다니게 만드는 것은 인사이동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 관리의 실패다.
신하리 골프장 진입도로 사업은 이미 주민제안 절차와 제안자의 이해관계, 도로 개설의 공익성 등을 놓고 논란이 이어져 왔다. 담당 공무원이 “골프장이 없으면 도로를 개설할 이유가 없다”는 취지로 발언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이 정도라면 담당 과장과 국장이 사실관계를 정리해 주민설명회를 열거나 공식 답변을 내놓았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감사·법무·도시계획 관련 부서가 함께 참여해 절차적 적정성도 검토해야 했다. 해결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 문제는 방법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움직이려는 사람이 없었다는 데 있다.
군민과 행정 사이의 갈등이 장기화하고 주민이 군청 앞에서 1인 시위까지 벌였다면 소통을 담당하는 조직도 적극적으로 나섰어야 한다. 소통은 행정에 대한 주민의 불신이 커질 때 현장으로 나가 목소리를 듣고, 담당 부서와 연결해 답변을 끌어내며,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지 않도록 조정하는 일이 진정한 소통이다.
주민이 뙤약볕 아래 쓰러질 위험을 감수하며 피켓을 들고 있는데도 누구 하나 제대로 말을 걸지 않았다면, 가평군의 소통 조직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검토 중이다’, ‘보고를 받지 못했다’, ‘면담을 추진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것은 소통이 아니다. 답변을 미루는 행정적 표현에 불과하다.
직급은 권위가 아니라 책임이다.국장과 과장, 팀장은 군수의 뒤에 서서 결재만 기다리는 자리가 아니다. 군수가 모든 현안을 직접 챙기지 못할 때 대신 주민의 목소리를 듣고, 담당 업무를 판단하며, 해결책을 만들어 보고하는 것이 간부 공무원의 역할이다. 주민과 갈등이 생기면 앞에 나서 설명하고, 잘못이 확인되면 바로잡으며, 오해가 있다면 자료를 내놓고 설득해야 한다.
그런 책임은 외면한 채 직급에 따른 권위만 내세운다면 서기관이니 사무관이니 하는 직함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조직의 중추적 역할은 하지 않으면서 자리와 완장만 누리려 한다면, 군민 눈에는 책임 없는 ‘똠방각하’로 비칠 수밖에 없다.
이번 사태의 책임을 군수 한 사람에게만 돌려서도 안 된다. 오히려 군수를 보필하고 행정을 사실상 움직여야 할 국장과 과장, 팀장, 소통 담당 조직의 무책임을 더 엄중하게 따져야 한다. 군수 면담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욕설하며 길을 막는 행동은 분명 잘못이다. 하지만 주민이 그런 극단적인 방식으로 호소하기까지 아무도 듣지 않았다는 사실 역시 결코 가볍지 않다.
가평군이 지금 해야 할 일은 주민의 표현 방식만 문제 삼는 것이 아니다. 담당 국장과 과장이 즉시 주민을 만나 사업 추진 경위와 절차, 공익성, 향후 계획을 자료로 설명해야 한다. 쟁점별 답변 시한도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주민이 군수를 붙잡아야만 움직이는 행정, 폭염 속에서 피켓을 들어야만 겨우 관심을 받는 행정은 정상적인 행정이 아니다.
군수만 바라보며 뒤에 숨는 간부 공무원들에게 묻는다.주민의 목소리를 대신 듣고 문제를 해결하지 않을 것이라면, 국장·과장·팀장과 소통 조직은 대체 왜 존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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