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녹색전환포럼서 드러난 한국 환경정책의 구조적 한계

“탄소중립은 선언됐지만, 현장에서 체감되는 정책은 거의 없습니다.”
최근 서울 구로구에서 열린 ‘2025 녹색전환포럼 및 녹색산업인의 밤’은 친환경 기술을 소개하는 자리이자, 동시에 한국의 기후·환경 정책이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 현장이었다.
사단법인 한국녹색제품협회와 녹색전환포럼이 주최한 이번 포럼에서 산업계·시민사회 관계자들은 한목소리로 “정부의 녹색전환 정책이 법과 목표 설정에 머물러 있으며, 현장 실행을 뒷받침할 제도와 시장은 여전히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법은 있는데 시장은 없다'
정부는 2050 탄소중립 목표를 내세우며 관련 법·제도를 잇달아 정비해 왔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법은 만들어졌지만, 기술이 사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는 여전히 부재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포럼에서 신기술을 발표한 한 기업 관계자는 “에너지 절감이나 저탄소 기술은 이미 상당 수준에 도달했지만, 공공 조달이나 제도적 수요가 없어 시장 진입 자체가 어렵다”며 “실증사업 이후가 막혀 있는 구조”라고 토로했다.
이는 녹색산업 정책이 R&D 중심에 치우친 반면, 구매·확산·보급 정책은 뒷전으로 밀려 있다는 오래된 지적과 맞닿아 있다.
‘전환 비용’은 누구 몫인가
포럼에서 반복적으로 제기된 또 하나의 쟁점은 전환 비용의 부담 주체였다. 에너지 전환과 저탄소 산업 구조로의 변화가 불가피하다면, 그 비용을 누가 어떻게 부담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국민성공시대는 발표를 통해 “기후위기는 개인의 실천만으로 해결될 수 없으며, 공공과 민간이 함께 참여하는 저탄소 기금과 금융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현재의 정책 구조는 기업과 개인에게 ‘전환의 책임’을 강조하면서도, 위험 분담과 비용 보전 장치는 충분히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기술은 앞서가는데 행정은 멈췄다'
공기발전기, AI 기반 전력 절감 기술 등 이날 소개된 친환경 기술들은 이미 상용화 가능 단계에 근접해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행정과 제도라는 지적이 현장에서 쏟아졌다.
한 참석자는 “신기술은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고, 담당 부처도 명확하지 않다”며 “환경부·산업부·국토부 사이에서 책임이 분산되다 보니 사업이 표류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부처 칸막이’는 녹색전환을 가로막는 고질적 문제로, 정책 목표와 현장 실행 사이의 괴리를 키우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녹색전환, 도시 정책에 갇혀선 안 된다'
사단법인 한국녹색제품협회는 이날 2026년을 겨냥한 전략사업으로 친환경 귀농·귀촌 주택과 스마트팜 결합 모델을 제시했다. 이는 녹색전환이 대도시·대기업 중심 정책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협회 관계자는 “기후위기 대응은 산업정책이면서 동시에 지역정책”이라며 “에너지·주거·농업을 연결한 생활 기반 전환이 이뤄지지 않으면 탄소중립은 공허한 구호에 그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간을 파트너가 아닌 하청으로 본다”
행사에 참석한 다수의 민간 관계자들은 정부가 여전히 민간을 정책의 파트너가 아닌 하청 주체로 인식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축사를 맡은 김주덕 태일 법무법인 대표(사단법인 맑은환경국민운동본부 이사장)는 “정책은 공공이 설계하되, 실행은 민간의 혁신에 맡겨야 한다”며 “정부가 위험은 회피하고 성과만 요구하는 방식으로는 녹색전환을 이끌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번 포럼은 한국 사회가 탄소중립이라는 목표 설정 단계는 넘어섰지만, 실행 단계로 전환할 준비는 충분하지 않다는 현실을 드러냈다. 전문가들은 ▲녹색제품 공공조달 의무화 확대 ▲전환 비용에 대한 사회적 분담 구조 ▲부처 간 통합 거버넌스 ▲지역 기반 녹색산업 모델 육성 등이 시급한 과제로 남아 있다고 진단한다.
기후위기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선언은 이미 충분하다. 이제 필요한 것은 정책의 속도와 방향을 현장에 맞게 재설계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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