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객전도(主客顚倒)의 전형‘ 완장 노릇’ 배척해야
6.25 제75주년 기념식장 전광판 화면(출처/NGN 뉴스 D.B)
지난 6월 25일, 가평군 체육관에서 열린 6.25 제75주년 기념행사는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순국선열과 참전용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려야 할 이 뜻깊은 자리에서, 정작 주인공인 참전용사 24분을 소개하는 데는 불과 2분밖에 할애되지 않았다. 반면, 80여 명의 내빈을 소개하는 데는 무려 12분이라는 긴 시간이 소요되었다.
행사에 참석한 500여 명의 국군 장병과 시민들은 영문도 모른 채 이름이 호명될 때마다 의미 없는 박수를 쳐야 했고, 상당수의 얼굴에는 탄식과 씁쓸함이 역력했다.
이러한 '내빈 소개병'은 비단 가평군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가평군의 사례는 그 정도가 지나쳐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연간 수십 차례 열리는 각종 행사에서 늘 보던 얼굴들이라는 인상을 주는 내빈 소개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행사의 본질을 훼손하고 참석자들의 피로도를 가중시킬 뿐이다.
▣'내빈 소개병'이 낳는 문제점
과도한 내빈 소개는 여러 가지 심각한 문제점을 야기한다. 행사의 권위와 진정성 훼손이다.
6.25와 같은 기념비적인 행사는 순국선열과 참전용사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 후대에 계승하는 데 목적이 있다. 그러나 불필요하게 긴 내빈 소개는 이러한 숭고한 의미를 퇴색시키고 행사를 단순한 요식행위로 전락시켰다.
참석자 피로도 가중과 반감을 유발하기도 한다. 지루하고 반복적인 내빈 소개는 참석자들의 인내심을 시험하며, 행사에 대한 몰입도를 떨어뜨리고 심지어는 조롱의 대상이 되게 만든다.
정작 존중받아야 할 참전용사들조차 이러한 상황에서 진정으로 존중받는다고 느끼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행태는 시대착오적인 권위주의의 발현이다. 과도한 내빈 소개는 우리 사회에 여전히 남아있는 구시대적인 권위주의와 서열 의식을 보여준다.
이름 한 번 불리는 것에 만족하고 귀한 시간을 낭비하는 이러한 행태는 더 이상 현대 사회에서 용납될 수 없다. 진정한 리더십은 불필요한 의전이 아닌, 실질적인 소통과 봉사에서 나온다.
일부 관변단체장은 "대중 앞에서 내빈 소개받는 이런 맛에 단체장 한다"며 시대착오적인 권위주의적 행태를 즐기기까지 한다. 이 말은 지난 5월 자라섬 봄꽃 페스타 개막식장에서 만난 관변단체장 A씨가 필자에게 한 말이다.
심지어 가평군 관계자는 특정 단체장을 초대하지 않으면 항의가 빗발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처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이는 군민을 위한 행정이 아닌, 특정 직함 가진 이들의 '완장 노릇'을 묵인하는 한심한 행태에 불과하다.
▣'내빈 소개병'을 뿌리 뽑아야 할 때,"시간 관계상 모두 소개 못해드린 점 양해..."
가평군의 '내빈 소개병'은 이미 중증 수준에 도달했다. 이제라도 이러한 병폐에서 벗어나 행사의 본질적인 목적에 충실하고, 진정으로 기념하고 감사해야 할 대상에게 집중하는 건강한 행사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형식보다는 내실을, 과시보다는 겸손을 택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군민을 위한 행정이자 존경받는 리더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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