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칙은 표류하고 신뢰는 잠식된다

인사는 조직의 혈관이다. 건강한 피가 막힘없이 흘러야 몸 전체가 활력을 유지하듯, 공정하고 투명한 인사는 행정 조직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그런 의미에서 12일, 포천시의회 행정사무감사에서 손세화 의원이 던진 질문은 조직의 혈관을 막고 있는 ‘혈전(血栓)’의 존재를 가리키는 날카로운 메스였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은 쉽지만,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는 행정의 항변은 너무나 익숙한 방어기제다. 문제는 ‘만족’의 문제가 아니라 ‘원칙’의 문제다.
1년에도 몇 번씩 주인이 바뀌는 자리, 2개월짜리 팀장, 6개월짜리 팀장이 수두룩한 ‘회전문 인사’는 행정의 전문성을 포기하겠다는 선언과 다름없다.
민원인은 오늘 상담한 담당자를 내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최소한의 기대조차 할 수 없다. 이런 혼란 속에서 “시민의 신뢰”를 논하는 것은 공허한 외침일 뿐이다.
더욱 기이한 것은, 이렇듯 잦은 순환의 반대편에 7년 이상 한 자리를 지키는 공무직과 3년 이상 같은 부서에 머무는 공무원들이 공존한다는 사실이다.
2년마다 전보를 시행한다는 원칙은 ‘승진’, ‘조직개편’, ‘민원 발생’이라는 편리한 예외 조항 뒤에 숨어 누더기가 된 지 오래다. 어떤 이는 너무 자주 바뀌어 문제고, 어떤 이는 너무 오래 머물러 문제다.
이는 원칙이 공정하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필요에 따라 고무줄처럼 늘어나는 ‘고장 난 시스템’의 명백한 증거다.
이 고장 난 시스템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 그 이름은 바로 ‘정무적 판단’이다.
손세화 의원의 지적처럼, 이 말은 실력과 원칙이 아닌, 상급자와의 관계나 보이지 않는 역학 관계가 인사에 개입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가장 위험한 신호다.
‘정무적 판단’이라는 안개 뒤에 숨어 원칙을 무시한 인사가 반복될 때, 공직자들은 능력보다 ‘줄서기’에 몰두하게 된다.
묵묵히 일하는 직원은 소외되고, 조직 전체는 냉소주의에 빠진다. 결국 그 피해는 행정 서비스의 질적 저하로 이어져 고스란히 시민에게 돌아간다.
이제 포천시는 답해야 한다.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 대신, 예측 가능한 인사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약속을 행동으로 증명해야 한다.
특히, 민원이 많다는 이유로 직원을 문제 인력으로 낙인찍는 구시대적 발상을 버려야 한다. 오히려 민원의 최전선에 선 직원의 고충을 헤아리고, 적극적인 문제 해결 의지를 격려하는 것이 공정한 평가의 시작일 것이다.
행정사무감사에서 반복된 지적은 단순한 쓴소리가 아니다. 조직이 병들어 있다는 경고등이다. 이 경고등이 꺼질 때까지 외면한다면, 그 책임은 온전히 인사권자의 몫이다.
포천시 공직사회를 떠도는 ‘정무적 판단’이라는 유령을 걷어내고, 오직 실력과 원칙이라는 나침반으로 인사의 항로를 바로잡을 때, 비로소 무너진 시민의 신뢰를 되찾는 길도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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