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산재, 이윤 앞에 스러진 생명들 솜방망이 처벌과 이주노동자의 비극,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 양상현 기자 기자
- 입력 2025.05.22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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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포천의 한 돼지고기 가공 공장에서 일하던 태국 출신 이주노동자 와폰(가명, 20대, E-9 비자) 씨의 이야기는 우리의 노동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지난달, 그녀는 대형 믹서기에 고기를 넣는 작업 중 왼쪽 손목이 절단되는 끔찍한 사고를 당했다. 사측의 지시에 따라 맨손으로 작업을 하던 중 벌어진 참사였다.
사고 이후 한 달이 지났지만, 그녀는 여전히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고 이후 잠을 잘 수가 없어요. 그 순간이 계속 떠오르고, 악몽에 시달립니다. 손에서 온몸으로 퍼지는 통증은 진통제로도 가라앉지 않아요”라고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와폰 씨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증상을 보이며 최근에야 정신건강과 진료를 받기 시작했다. 산재 승인은 받았지만, 정신적 치료에 대한 보상은 별도로 신청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녀가 겪는 이중, 삼중의 고통은 단순한 개인의 비극이 아니다. 이는 한국 사회가 이주노동자의 생명을 얼마나 가볍게 여기는지, 그리고 산업재해(산재)에 대해 얼마나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다.
와폰 씨의 사고는 단지 한 사람의 불행으로 끝나지 않는다. 2020년 12월,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 속헹(가명, 30대) 씨는 채소 농장의 열악한 기숙사에서 한파 속 동사했다.
난방이 멈춘 지 이틀째, 그녀가 도움을 요청했음에도 사업주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두 사건의 공통점은 명확하다. 바로 사업주의 과실과 이윤 우선주의다. 노동자의 안전보다 효율과 이익을 앞세운 태도가 이들을 죽음과 장애로 몰아넣었다.
한국은 한 해 2천 명 이상의 노동자가 산재로 목숨을 잃는, 이른바 ‘산재 초강국’이다. 2024년 국가인권위원회 조사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이주노동자 사망자만 3천 명에 달하며, 대다수가 과로사 등 산재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들 중 90% 이상은 사인 규명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채 졸속 처리된다. 지난 20년간 산재로 4만 명이 죽고 400만 명 이상이 다치거나 병들었다는 통계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이는 국가와 자본이 손잡고 노동자의 생명을 경시한 결과다.
문제의 핵심은 솜방망이 처벌에 있다. 산재로 노동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거나 평생 장애를 안겨도,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는 제대로 된 책임을 지지 않는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 있지만, 여전히 실질적 책임자가 처벌을 피해갈 구멍은 넓다. 영국, 캐나다, 호주 등은 ‘기업살인법’을 도입해 강력한 처벌로 산재를 크게 줄였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제자리다. 이주노동자 지원센터 관계자는 “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니 사업주들은 안전 관리에 소홀해도 큰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며 “결국 이윤 극대화를 위해 노동자의 생명을 희생시키는 행태가 반복된다”고 지적했다.
정치적 변화에 대한 기대도 크지 않다. 대선을 앞두고 각 정당이 다양한 공약을 쏟아내지만, 친자본적 성향이 강한 정당들이 집권해도 산재 문제 해결은 요원하다는 회의적 시각이 지배적이다.
노동자의 생명을 이윤보다 앞세우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단순한 정권 교체가 아니라 체제 변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런 변화의 기미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와폰 씨는 사고 이후 작업 방식이 도구 사용으로 바뀌었다고 전했다. 그녀는 씁쓸하게 웃으며 “내 손이 다친 뒤에야 바뀌었어요. 왜 더 일찍 안전을 생각하지 않았는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했다.
그녀의 말은 우리 사회에 던지는 무거운 질문이다. 또 한 명의 노동자가 희생되어야만 변화가 시작되는 이 현실을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산재는 단순한 사고가 아니다. 그것은 구조적 문제이며, 국가와 자본이 함께 책임져야 할 비극이다. 지금이라도 제대로 된 처벌과 예방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와폰 씨와 속헹 씨 같은 피해자는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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