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선도로·새벽시간 '치명적'…졸음운전보다 더 무서운 '방심 운전’

최근 서해안고속도로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현장, 사고 차량 운전자는 경찰조사에서 "크루즈 컨트롤을 켜놓은 상태였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출처 한국도로공사]
올해 고속도로 교통사고 사망자가 지난해보다 52%나 급증한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주고 있다. 경찰은 첨단 운전자 보조 기능(크루즈 컨트롤·차로유지보조 등)에 대한 과도한 신뢰로 운전자들의 전방 주시가 느슨해진 것이 주요 원인 중 하나로 분석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1~5월 고속도로 교통사고 사망자는 96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63명보다 33명이 늘어 52% 증가했다. 이는 같은 기간 기준으로 2012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특히 사고 유형을 분석한 결과 운전자들이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직선도로에서 사망자가 92명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커브길보다 직선도로가 오히려 더 위험한 셈이다.
"차가 알아서 간다"는 순간 사고는 시작된다
전문가들은 최근 차량에 장착된 적응형 크루즈컨트롤(ACC), 차로유지보조(LKA), 고속도로 주행보조(HDA) 등의 기능이 운전 피로를 줄여주지만, 이를 자율주행으로 오해하는 순간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경찰은 운전자들이 주행보조 기능을 켜놓고 스마트폰을 보거나 한눈을 팔면서 전방 정체 상황을 뒤늦게 발견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통계에서도 이를 뒷받침하는 결과가 나왔다. 사망사고 가운데 가장 많은 유형은 사고나 고장으로 멈춰선 차량을 뒤늦게 발견해 들이받는 2차 사고(15명)였다. 이어 정체구간 추돌사고(12명)가 뒤를 이었다. 두 사고 모두 운전자가 전방을 제대로 주시했다면 상당수 예방이 가능했던 사고라는 분석이다.
졸음운전보다 더 위험한 '방심운전’
고속도로 사고의 대표 원인은 오랫동안 졸음운전으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차가 알아서 달린다"는 심리적 안도감이 만드는 '방심 운전'이 새로운 위험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졸음운전은 운전자 스스로 피곤함을 인지해 휴게소를 찾거나 운전을 멈출 가능성이라도 있다. 반면 주행보조장치에 대한 과신은 운전자가 위험 자체를 인식하지 못한 채 주의를 잃게 만든다는 점에서 더 위험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실제로 차량은 차선을 유지하고 앞차와 거리를 조절하지만, 갑작스러운 정차 차량이나 도로 위 낙하물, 작업 차량 등 예상하지 못한 위험에는 즉각 대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새벽 0~2시 '죽음의 시간’
시간대별로는 자정부터 오전 2시, 오전 4시부터 6시 사이 사망사고가 집중됐다. 특히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에는 대형 화물차 관련 사망사고가 많아 경찰은 화물차 졸음운전에 대한 집중 관리가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또 앞지르기 차로는 사고 건수는 많지 않지만 치사율은 일반 주행차로보다 두 배 이상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터널과 지하차도에서도 사망자가 14명 발생해 폐쇄 공간에서의 추돌 위험도 큰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6.24일 오전 8시 경, 46호 경춘국도 가평군 하천리 인근 커브길에서 차량이 전복되는 사고가 발생했다.[사진 정연수 기자]
"주행보조는 보조일 뿐“
자동차 업계는 현재 판매되는 대부분의 주행보조 시스템이 운전자를 대신하는 자율주행이 아니라 운전을 보조하는 장치라고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다. 운전자의 손은 항상 핸들 위에 있어야 하고, 시선은 반드시 전방을 향해야 한다.
경찰 역시 사고 다발 구간에 순찰을 강화하고 터널과 지하차도 안전시설을 확충하는 한편, 운전자들에게 주행보조장치를 과신하지 말고 전방주시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과거 고속도로 최대의 적은 졸음운전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새로운 적이 등장했다. '차가 알아서 간다'는 착각이다. 크루즈컨트롤은 편리한 기술이지 운전자를 대신하는 기술이 아니다.
운전대를 잡고도 운전을 하지 않는 순간, 첨단기술은 생명을 지켜주는 장치가 아니라 가장 위험한 함정이 될 수 있다. 특히 시속 100km로 달리는 고속도로에서는 단 2~3초의 방심이 수십 미터를 질주하는 시간이며, 그 결과는 되돌릴 수 없는 비극으로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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