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 철거 논란을 둘러싼 국가의 책임

역사의 흔적을 지운다고 해서 과거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기억의 장소가 사라지면, 진실을 마주하고 반성할 기회는 점점 희미해진다.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 철거를 둘러싼 논란은 단순한 행정적 문제가 아니다. 이는 국가가 저지른 폭력의 기억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에 의해 유린된 인권, 그리고 지금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는 1973년 박정희 정권이 ‘기지촌 정화사업’의 일환으로 설립한 강제수용시설이었다. 이곳에서는 성매매 여성들이 감금된 채 성병 치료를 강요당했다. 여성들은 페니실린을 과다 투여받았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다. 생존자들은 지금도 육체적, 정신적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2022년 대법원은 국가가 이들 여성의 인권을 침해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배상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정부는 여전히 책임을 회피하고 있으며, 동두천시는 이 시설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려 한다. 역사적 아픔을 기억해야 할 공간을 호텔과 상가로 대체하겠다는 발상은, 국가 폭력에 대한 반성과 기억을 지우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 공익감사 청구, 그 의미와 한계
공대위(동두천 옛 성병관리소 철거저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지방재정법 위반을 근거로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1,288명의 시민이 서명한 이 감사 청구는 단순한 행정 절차의 문제를 넘어, 역사적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한 첫걸음이다.
그러나 과연 감사원이 동두천시의 잘못된 행정을 바로잡을 수 있을까? 이번 사안을 통해 드러난 것은 행정 절차상의 문제뿐만이 아니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한국 사회가 이 사건을 어떻게 기억하고, 정부가 피해 여성들에 대해 어떤 책임을 질 것인가 하는 점이다. 행정적 문제 해결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국가의 공식적인 사과와 피해자들에 대한 실질적 지원이 동반되어야 한다.
▣ 기억을 지울 것인가, 역사로 남길 것인가
우리는 일본 정부에 위안부 문제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면서, 정작 자국민에게 저지른 폭력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의 보존 문제는 단순히 한 지역의 개발 이슈가 아니다. 이는 국가가 과거의 잘못을 어떻게 기억하고 반성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다.
이 시설을 철거한다면, 과거의 잘못을 증언할 장소도 사라진다. 우리는 다시 한 번 묻지 않을 수 없다. 국가는 왜 이 장소를 없애려 하는가? 우리가 지워야 할 것은 건물이 아니라, 국가 폭력을 정당화하는 인식이다.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는 보존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곳은 단순한 박물관이 아니라, 국가가 저지른 폭력을 기억하고 반성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과거를 기억하는 것은 과거에 머물기 위함이 아니다. 그것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다. 역사를 지운다고 해서, 국가가 저지른 폭력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철거냐 보존이냐의 문제를 넘어서, 이제 우리는 진정한 역사적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선택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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