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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연속 컬럼..5부 가평군의 발전과 잠곡 김육

  • NGN뉴스 정연수 기자 기자
  • 입력 2021.10.25 09:55
  • 조회수 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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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동진.jpg

*글 싣는 순서.. 

1부.가평군 잠곡(潛谷)과 대동법의 명재상 김육

2부.석봉 한호와 잠곡 김육

3부.스토리텔링 콘텐츠의 보고 잠곡 김육

4부.공정의 시대와 잠곡 김육 

5부.가평군의 발전과 잠곡 김육

 

추운 겨울 밤 잠 못 이루고 일정 살피는데

호화로운 객관에 부는 바람이 뿔피리 소리 같네

좋은 수레를 타도 근심 매우 깊으니

가평(嘉平)이 어찌 나의 가평(加平)과 같겠느냐 - 잠곡 김육

 

[가평=NGN뉴스] [기고=신동진 잠곡김육선생 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이 시는 잠곡 김육 선생이 중국 청나라 북경의 여관에 묵었을 때 지은 시로 알려지는 시다. ‘북경(北京)’이 과거 ‘북평(北平)’으로 불렸으니, ‘가평(嘉平)’은 ‘아름다운 북평’이라는 뜻이다. 잠곡 선생은 청나라의 수도 북평(北平)에 사신으로 가서 호화로운 대접을 받으면서도 자신이 가난한 농민으로 살았던 ‘가평(加平)’을 그리워했다.

 

이렇게 잠곡 선생은 아름답고 편안한 마음의 고향으로 가평을 간직하고 있었다.

 

이런 마음을 알고 있는 가평의 선비들은 1705년 선생이 움막을 짓고 살았던 잠곡의 집터에 선생을 기리는 잠곡서원을 지었고, 2년 뒤 임금으로부터 사액서원으로 공인받아 1870년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될 때까지 165년간 가평 군민들을 교육하고 선현들에 대한 제사를 지냈다. 

 

사액서원이 되면 국가로부터 면세전 3결과 노비를 받았다고 하니 잠곡 선생으로 인해 가평군민이 받은 정신적, 물질적 혜택과 영향은 적지 않았을 것이다. 비록 서원은 없어졌지만, 가평의 유림들은 선생을 모시는 제단을 설치하고 계속 향사를 지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제단마저 6.25전쟁 중 파손됐다. 시간이 흘러 춘천 유림 출신으로 청평에 이사 온 최상규 선생을 중심으로 1978년 잠곡서원 복원 운동이 시작됐고 1981년 잠곡서원지로 추정되는 청평 안전유원지 안에 토지 소유주의 양해를 얻어 잠곡선생추모비를 건립하고 매년 제사를 지냈다. 이 곳은 잠곡서원지로 경기도 문화재로 지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서원지 땅을 포함해 이 일대 땅을 구입한 서울의 사업가는 재산권 행사를 위해 서원지의 이전을 요구했고, 지표조사 결과 서원 건축물이 있었다는 흔적이 없다는 등의 이유로 결국 경기도 문화재에서 해제가 됐다. 

 

그 이후 잠곡선생추모비는 청평도서관 앞으로 옮겨졌다가 그 자리에 문화체육센터가 들어서면서 구청평역사터로 옮겨졌다가, 현재 7080 청평고을 조성 사업과 도로공사로 인해 새로 옮겨질 장소를 기다리며 공사장 한쪽에 임시이전돼 있다. 

 

이런 과정 속에서도 매년 향사는 거르지 않고 지내고 있고, 그런 선배 주민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필자도 잠곡 선생의 존재와 위대함을 알고 이렇게 잠곡김육선생기념사업회의 사무국장을 맡아 일을 하게 되었다. 

 

이번 연속기고 컬럼을 쓰게 된 계기는 새로 또 기념비를 옮겨야 하는 상황에서 가평군 행정이나 주민 일반의 생각이 변하지 않고는 잠곡 선생의 선양이 어렵겠다는 판단이 들어서였다.

 

1부를 통해서 조선시대 최고의 경세개혁가이자 실학의 태두, 대동법을 실천한 명재상, 농사꾼 출신의 영의정이었던 김육 선생이 바로 가평군 청평면 잠곡에서 그 뜻을 키운 분이라는 사실을 얘기했다. 

 

2부 글을 통해 가평군은 없던 이야기를 새로 만들어가면서까지 한호 석봉 선생과 가평군의 인연을 엮어 한석봉 선생을 선양해 왔고, 그 주체가 문중이나 기념사업회가 아닌 가평군 민관이었음을 밝히며, 한석봉 선생에 비해 잠곡 김육 선생은 더 깊은 인연과 후세에 대한 영향이 컸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모셔지지 못하고 있음을 얘기했다. 

 

3부에서 잠곡 김육 선생의 철학, 삶, 작품 등에 무궁무진한 문화역사 스토리텔링 소재들이 있으며, 그런 소재들은 가평군의 관광자원으로서 다른 곳과 차별화되는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사례들을 제시했다. 

 

그리고 4부에서 지금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와 인류가 ‘불공정’의 위기를 겪고 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공정의 시대’가 열리고 있고, 이런 시대에 조선시대 대표적인 공정 정책인 대동법과 그 주창자 잠곡 김육 선생이 주목받을 수밖에 없음을 얘기했다. 

 

부족하나마 독자들께서 잠곡 선생을 폭넓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기를 기대한다.

 

이제 마지막 기고다. 앞으로 필자와 필자의 뜻에 공감하는 분들과 함께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얘기하려 한다. 

 

잠곡 김육 선생 선양에 부정적인 분들 중에는 잠곡서원 ‘문화재’가 지정되면 그 주변의 재산권 행사에 제약을 받을 것을 우려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전혀 틀린 말도 아니지만 그 단견에 안타까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여하튼 그런 생각을 하시는 분들에게 지금 기념사업회는 문화재 발굴, 복원, 지정을 위해 일하고 있는 것이 아님을 밝힌다. 

 

‘잠곡 김육’이라는 가평군의 소중한 역사문화 자원을 가평군 발전을 위해 제대로 알고, 활용하자는 것이 첫 번째다. 이를 위한 최소한의 근거지로서 작게라도 잠곡 김육 선생 공원을 만들고, 더 나아가 기념관을 만들자는 것이다. 그 기념관이 제사도 지낼 수 있는 곳이어야 하니 가급적 한옥 건물이면 좋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건물이 문화재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재산권 행사를 못할까 지레 불안한 생각을 하지 말기를 바란다. 

 

필자는 이 기고를 끝내고 이제 사람을 모을 계획이다. 그 사람은 가평군민만으로 한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잠곡 김육 선생은 가평군만으로 품기에는 너무 큰 분이고, 가평군만으로 동력을 만들어내기에는 더 큰 에너지와 감정노동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대동법, 실학, 경제민주주의, 공정과세, 행정혁신 등 선생의 철학과 삶과 연결한 다양한 주제로 선생을 기리는 가평군 밖의 역량 있는 전문가분들을 잠곡 선생 선양을 위해 모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공정의 시대가, 스토리텔링 관광의 시대, 소멸위기와 분열의 가평군이 지금 잠곡 김육 선생을 필요로 하고 있기에 마음이 바쁘다. 준비하지 않는 사람에게 기회는 오지 않는다. 가평군 발전을 위한 기회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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