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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연속 컬럼.. 1부 가평군 잠곡(潛谷)과 대동법의 명재상 김육

  • NGN뉴스 정연수 기자 기자
  • 입력 2021.09.27 13:37
  • 조회수 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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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싣는 순서.. 

1부.가평군 잠곡(潛谷)과 대동법의 명재상 김육

2부.석봉 한호와 잠곡 김육

3부.스토리텔링 콘텐츠의 보고 잠곡 김육

4부.공정의 시대와 잠곡 김육

5부.가평군의 발전과 잠곡 김육

    

[기고=신동진 잠곡김육선생기념사업회 사무국장]대동법은 한국사 교과서에 실려 있고, 각종 시험의 한국사 시험에서도 자주 출제되는 조선시대 대표적인 조세개혁 제도다. 

 

잠곡 김육 선생은 그 ‘대동법의 명재상’으로 일컬어지고, 그래서 조선시대 최고의 경세개혁가 라는 칭송을 받는 분이다. 대동법이 있었기에 조선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엄청난 국란을 겪은 후 붕괴 위기의 국가 경제를 안정시킬 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다. 대동법은 집에 매기는 세금이 아니라 땅에 매기는 세금이었다. 

 

그러니 대동법 이전 농지를 많이 가진 양반 집과 적게 가진 가난한 평민 집이 같은 세금을 냈다면, 대동법 시행 이후에는 농지를 더 많이 가진 양반이 더 많은 세금을 내게 됐다. 더 많이 번 사람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걷고, 토지 불로소득을 견제하는 공정과세였던 것이다. 당연히 토지를 많이 가진 양반층의 저항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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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청평역 터 잠곡 김육선생 기념비)  

 

이 저항을 뚫고 정파의 이해를 넘어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국가를 부강하게 만들기 위해, 즉 안민부국(安民富國)을 위해 평생을 목숨 걸고 대동법을 추진한 분이 바로 잠곡 김육 선생이다. 이 분의 호 ‘잠곡(潛谷)’은 지금의 청평4리 안전유원지 지역이다. 성균관의 대표 학생 격이었던 청년 김육은 광해군 시기(1613년)에 정쟁을 피해 고모부의 연고지인 잠곡에서 일반 백성처럼 살았다. 움막 짓고 농사짓고, 땔감 만들어 한양에 가져다 팔며 진짜 농부로 살았다. 

 

한 번은 이웃 농부에게 하루 빌린 소로 밭을 가느라 어렵게 찾아 온 양반 친구를 하루종일 기다리게 할 정도로 가난한 농부로 살았다. 김육 선생은 초야에 묻혀 조용히 살고자 하는 자신의 뜻과 잠긴 계곡(잠곡)이라는 지명이 서로 통한다는 생각에 자신의 호를 ‘잠곡’이라 지었다.

 

그리고 인조반정(1623년) 후 관직에 발탁돼 영의정에 오르고 숨을 거둘 때까지 ‘잠곡’이라는 호를 버리지 않고 계속 사용했다. 그리고 힘든 난관을 겪을 때마다 ‘잠곡’에서의 생활을 그리워하며 시를 쓰곤 했다. 

 

「(전략)

울 아래엔 소나무와 국화를 심고, 동산에단 복숭아와 밤을 심었지

맑고도 찬 계곡물을 길어 마시고, 소슬 부는 골짝 바람 소리 들었지

약초 캐러 구름 뚫고 산 올라갔고, 낚시한 뒤 달빛 안고 돌아왔었지

나무하는 늙은이나 농사꾼들과 세월이 오래됨에 사귐 깊었고

가을 서리 내리면 추수 서둘고 봄비가 내릴 적엔 밭을 갈았지

손님 오면 웃옷을 벗은 채 웃고, 산골 술상 따로 차릴 것이 뭐 있나

수건으로 동이 속의 술을 거르고 물고기에 나물 무침 그거면 됐지

맑은 담소 나누면서 소원함 펴고 큰 소리로 노랫가락 흥을 돋웠지

창 밖에는 푸른 산 가득 널렸고 집 안에는 난초 향기 가득도 했지

어쩌다가 밝은 시대 연모하여서 훌쩍하니 오두막집 하직했나”」

 

- (잠곡유고) 중 ‘가소음(可笑吟)에 공경히 차운하다’ / 시(詩)를 통해 본 김육의 현실인식(이정철) 재인용」

    

시에서 묘사하는 곳은 바로 ‘잠곡’이다. ‘잠곡’은 경세개혁가 김육의 마음의 고향이었고, ‘잠곡’의 ‘오두막 집’은 ‘밝은 시대’를 ‘연모’했던 초심의 둥지였다. 김육 선생은 ‘잠곡’을 평생 잊지 않았다. 그러나 ‘잠곡’은 아니 가평군은 ‘잠곡 김육’을 기억 하고 있는가? 

 

<잠곡김육선생기념사업회 사무국장 신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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