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직도 인정서 제출 강요하는 주간보호센터\'

[경기도=NGN뉴스]양상현 기자=어머니가 치매 판정을 받은지 7년이 지났다. 그간 주간보호센터를 다니면서 서류작업 및 병원 통원 등은 그곳에서 알아서 해 준다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었는데, 갑자기 사정이 달라졌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포천시 소흘읍 송우리 소재 A주간보호센터에서 신읍동 소재 B센터로 옮기면서다.
B센터로 처음 간 것이 지난 7월 3일 토요일인데, 바로 그날부터 장기요양 인정서와 표준장기이용계획서를 제출하라는 닦달이 시작됐다.
보통 치매환자가 센터를 옮기게 되면 우선 체크해야 할 부분이 무슨 지병을 앓고 있으며, 어느 병원에 다니며, 어떤 약을 먹는지부터다.
그런데 B센터는 이런 부분보다 '인정서'가 먼저였다. 인정서가 있어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장기요양급여를 신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용자 입장에서는 이런 부분이 개운치 않다. 한번 다니기 시작하면 최소 몇 년간, 어쩌면 여생을 모두 그곳에서 보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우리나라 노인인구는 813만 4674명 가운데 추정 치매환자수는 84만 191명이다. 추정 유병률은 10.3% 수준이다. 2030년에는 전체 노인의 10.5%인 136만명이 치매를 앓을 것으로 예상된다. 치매환자와 가족의 고통과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정부는 이미 지난 2017년 9월 치매 국가책임제를 발표했다.
치매 국가책임제 발표 이후 보건복지부는 치매 예방부터 돌봄치료 가족지원 등 국가 차원의 전주기적 관리체계를 구축 중이다.
하지만 기자는 5일 오후, 집에 돌아와서 안방 한가운데 그대로 서 있는 '보행기'를 보고 깜짝 놀랐다. 요양보호사가 그냥 문만 열어주고 환자에게 그냥 알아서 들어가라고 했다는 뜻이다. 그까짓 보행기쯤이야 치매환자라도 혼자서 펼치고 접을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정은 그렇지 않다.
혼자서는 일상생활을 수행하기 어렵기에 요양급여를 신청, 이용하고 있는데 그냥 집에서 센터로, 또 센터에서 집까지 모셔다드리기만 하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런 사고방식에는 한 사람을 존재할 수 있게 한 ‘의존’을 상상할 여지가 없다. 그 사람이 무엇에 의존해왔는지를 철저히 은폐할 뿐이다. 하지만 의존하지 않고 존재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하물며 치매환자인데 말이다. 치매 당사자와 가족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보다 더 내실을 다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까닭이다.
다니는 센터가 바뀌었으니 하는 방법도 다르겠지만, 전에 다니던 A센터와는 너무나도 비교된다. A센터 보호사는 보행기를 접어서 베란다에 놓아두고, 외투는 벗겨서 옷걸이에 걸어 줬다. 심지어 집에 오면 거의 누워서 생활하는 어머니를 위해 침구 등 이부자리까지 살펴줬다.
생각이 이쯤에 이르자, 기자는 최근 한일 양국간의 격차가 역전됐다는 소식이 떠올랐다. 일본의 기업 문화는 팩스와 도장과 같은 아날로그식 업무 방식으로 정의될 수 있다. 전자문서보다는 종이문서가 익숙하고, 비대면보다는 대면 보고가 중심이다. 기업들의 IT 인프라도 우리나라에 비해 낙후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코로나19로 일본에서도 재택근무가 확대됐지만 아날로그 업무의 대표격인 ‘도장 문화’는 쉽게 바뀌지 않고 있다고 한다. 서류에 직접 도장을 찍기 위해 출근할 정도라는 것.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지난해 4월. 일본 도쿄의 한 전철역에 게재된 한 광고에는 ‘도장을 찍기 위해 출근했다’는 문구와 함께 ‘승인’이라며 도장이 찍혀있었다.
이 광고는 도장 업무 때문에 재택근무를 할 수 없는 일본 직장인들의 심정을 대변하면서 많은 공감을 얻었다.
한 인터넷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들이 재택근무를 하면서 불편한 일 중 두 번째로 ‘서류에 사인이나 날인을 받지 못하는 점’이 꼽혔다. 단순히 도장을 찍기 위해 출근한 적이 있다는 직장인들이 3분의 1 이상이었다. 전자서명 등이 발달했지만, 여전히 직접 도장을 찍는 회사는 55%에 달한다.
일본은 공과금 영수증부터 각종 증명서 등 서류에 도장을 사용하는 관습이 자리 잡고 있다. 도장의 종류도 다양하고 기업이나 관공서에서도 도장을 중요시 여긴다. 한때는 일본 문화의 상징이었지만 비능률의 상징으로 변화 앞에 놓인 도장 때문에 한일간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지난 5일 밤, B센터장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인증서 때문에 알려드립니다. 인정서 중간쯤에 공단번호가 있습니다. 그곳에 전화하셔서 확인해보세요. 보호자가 직접 오거나 우편으로만 가능합니다. 개인정보에 대해서 철저해 팩스로도 안 된다고 하니 내일은 서류 준비 부탁드립니다. 인정서 귀찮으시더라도 꼭 가져오시기 바랍니다. 저희가 어르신에 대한 계획서를 공단에 보내야 합니다"라는 내용이다.
우리나라의 건강보험관리공단은 여전히 아날로그로 대면업무에 집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불필요한 시간과 비용이 소비된다
고령 인구 증가로 부양을 책임지는 인구가 많아진 데다, 코로나 이후 노동시장이 불안정해지며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한 중장년층도 늘어났다. 거기에 비혼이나 이혼 등으로 가족 형성을 하지 않는 경우가 늘면서 치매환자 부양에 대한 고민이 가중되고 있는 가운데 아날로그만 고집하는 건강보험관리공단의 행태는 시정돼야 마땅하다.
B센터장의 요구대로 '인정서'를 받으러 건강보험관리공단에 다녀오면 되겠지만, 그러면 이런 문제를 은폐하고 더 심화시킬지 모른다. 우리는 은폐된 자리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전세계적으로 치유가능한 치료제가 없는 치매는 만성질환이나 뇌신경 이상 등으로 발생하며 치매 당사자는 물론 가족들까지 온전한 일상생활을 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뒤떨어진 도장과 대면업무 문화를 비판하기 전에 우리 사회에도 불필요한 시간과 비용을 발생시키는 관습은 없는지, 되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BEST 뉴스
-
[단독]성폭행 고소 되레 ‘무고’ 판단…경찰,가평군의원 A씨 검찰 송치
과거 한 남성을 성폭행 혐의로 고소했던 가평군의회 A 의원이 이번에는 무고 혐의로 검찰에 넘겨진 것으로 알려졌다. 믿을 만한 관계자에 따르면 경찰은 최근 A 의원에 대한 무고 혐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해 기소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한 것으로 전해졌다. 본보 취재를 종합하면 A 의원은 지난 2021년 B씨... -
예견된 이사장 공석, 왜 늑장 인선했나…‘특정 퇴직 서기관 맞춤형 인사’ 의혹
-취업제한은 2027년 6월까지…두 달 늦춘다고 제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 -가평군, 지연 사유·후보 접촉 여부·취업심사 진행 상황 투명하게 밝혀야 가평군시설관리공단 이사장 자리가 후임자 선임도 없이 공석으로 방치되면서 가평군의 늑장 인사를 둘러싼 의혹이 커지고 있다. 전임... -
[단독]시설공단 이사장 공모에 불거진 ‘모계 8촌설’…가평 술렁
-지원자 9명,서 군수 선거캠프 선대본부장 출신도 포함 -친족관계만으로 내정 단정 못 해…“심사·추천 과정 투명하게 공개해야” 가평군청 외경.[드론/정연수 기자] 가평군시설관리공단 신임 이사장 공개모집을 둘러싸고 서태원 가평군수와 공모에 지원한 김구태 전 가평군 서기관이 모계 ... -
[집중취재/물 위에 세운 파크골프장①] 6개 읍·면에 160억…가평군은 왜 하천으로 몰렸나
본보는 가평군을 비롯한 경기북부 지자체들이 경쟁적으로 추진하는 파크골프장 건설 실태를 점검하고, 하천부지 침수 위험과 반복 복구비, 환경 훼손 및 중복투자 문제를 짚어보기 위해 3회에 걸쳐 연속 보도한다.-편집자 주- -대성리 기존 36홀 인근에 54홀 추가…청평 생활권에 총 90홀 -가평읍 달전리에도 2... -
[현장 르포] ‘경자유전’ 칼바람에 얼어붙은 농촌 부동산…가평 개발경제가 멈췄다
-설악면 외지인 소유 농지 ‘반값 매물’까지 등장했지만 거래 절벽 -중장비·주유소·철물점·식당으로 불황 확산…경기북부 농촌경제 ‘도미노 위기’ 경기 가평군 설악면의 농지. 이 땅은 서울에 거주하는 최 모씨가 세컨하우스를 짓기 위해 3년 전 매입했다. 그런데 농지 전수 조사가 시작되면서 매... -
"측근일수록 권력에서 한 걸음 더 물러서야 한다"
권력의 곁에는 언제나 ‘측근’이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선거철 후보자의 옷깃만 스쳐도 측근을 자처하고, 유세장을 따라다닌 인연은 어느새 ‘성골’과 ‘진골’을 가르는 훈장처럼 포장된다. 선거가 끝나면 기다렸다는 듯 ‘논공행상’이라는 낡고 불편한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26일 가평군시설관리공단 신임 이사장 공개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