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용한 전장’에서 목숨 잃은 사람들, 그리고 외면받는 안전
▲사망사고가 발생한 K 골프장, 사고 원인 등을 관계자들이 파악중이다.[사진/독자 제공]
18일 오후 1시, 경기도 가평군 상면 K골프장. 코스 정비를 위해 차량을 몰던 70대 근로자 두 명이 타고 있던 차량이 7m 높이 경사면으로 추락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졌다.
그런데도 골프장은 사고 직후 영업을 멈추지 않았다. 손님이 티오프(tee-off)를 기다리는 동안, 인근에서는 경찰과 구급대가 시신을 수습했다.
▲두명의 인부가 숨진 K 골프장에서 골퍼들이 티샷을 준비하고 있다.[사진/독자 제공]
전국에 500여 개가 넘는 골프장이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골프장 노동자’들의 안전은 철저히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잔디 관리, 방제, 코스 정비, 장비 운전 등 대부분의 업무가 외주·하청 구조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산업안전보건공단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체육시설·레저업종’에서 발생한 산업재해 사망사고 중 약 37%가 골프장 관련 사고였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현장작업 중 사고’로 분류돼 중대재해로 공식 집계되지 않았다.
한 노무사는 이렇게 말한다.“골프장은 외형상 서비스업이지만, 내부적으로는 건설현장 수준의 위험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사업주는 이를 ‘청소용역’ 수준으로 인식하죠. 이 구조가 계속된다면, 사고는 반복됩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의 그림자…‘경영책임자 면죄부’ 현실
이번 가평 사고는 명백한 중대산업재해에 해당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법 적용은 쉽지 않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에게 책임을 묻지만, 대부분의 골프장은 ‘운영 법인–위탁법인–용역업체’로 이어지는 다단계 구조를 갖고 있어 실질적 책임 소재가 모호하다.
노동부 관계자는 “형식상 하청 근로자일 경우, 원청인 골프장 측이 ‘직접 고용이 아니다’라며 법 적용을 피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결국 죽음은 노동자의 몫으로, 법의 그늘은 경영자의 방패로 작용한다.
‘사람보다 손님’…사고 은폐가 관행이 된 현장
현장 관계자들에 따르면, 골프장들은 “사망사고=영업손실”이라는 이유로 사건을 외부에 알리지 않거나, 직원들 사이에서 “입단속”을 시키는 경우가 많다.
골프장 8학군인 용인 모 골프장 전직 코스관리팀 직원은 이렇게 증언했다. “잔디를 깎던 중 기계에 끼여 죽은 동료가 있었는데도, 손님 예약이 꽉 차 있다고 영업을 계속했습니다. 그날 저녁에야 일부 구역만 통제됐죠.”
이번 K골프장 사고 역시 같은 패턴이다. 두 명이 사망했지만, 골프장은 손님을 받았다. 심지어 현장 통제도 하지 않았다. 이른바 “조용한 은폐”다.
지역사회 “사람이 죽었는데, 골프가 문제냐”
사고 직후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는 분노가 들끓었다. “사람이 죽었는데 골프를 치는 게 말이 되냐”는 반응이 이어졌다.노동계는 “골프장은 노동자에게도, 고객에게도 ‘위험을 감춘 공간’이 되어선 안 된다”며, 산업안전보건법 강화와 중대재해처벌법의 실질적 적용을 촉구하고 있다.
이번 사고는 단지 ‘한 골프장의 비극’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전국 곳곳의 골프장에는 오늘도 새벽부터 잔디를 깎고, 농약을 뿌리고, 중장비를 모는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이 있다.
그들의 이름이 뉴스에 오르는 건, 죽었을 때뿐이다.사람보다 골프가 먼저’라는 이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또 다른 죽음은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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